(61) 새 사진 Tokyo Drift Life

7월이었다.

일본의 여름을 처음 겪어보는 나였지만, 초여름이라서 그랬는지 생각만큼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난 여름을 너무나 힘들어했고, 그래서 겪어보지도 않은 일본의 여름에 겁먹고 있었지만 지금 나는
무엇보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길을 나서는 길이었다.

배 편으로 대충의 짐은 보내놨지만 마지막 짐을 싸다보니 또 한가득 짐이 나왔다.
이민가방 하나로 시작된 여행길이었지만 돌아갈때는 그만한 크기의 캐리어 백이 하나 더 추가 되어있었다.
왠만한건 깨끗하게 포기하고 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아침 일찍 짐을 다시 확인하고, 도미토리의 침대에 게스트 하우스의 열쇠를 놓아두는 것으로 이곳에서의 할 일은 끝났다.

현관의 청소당번이 적힌 화이트 보드에서 내 이름을 지우고, 깨어있는 몇몇의 하우스 메이트와 짧은 인사를 끝으로 집을 나섰다.
내 이름을 지우면서 뭐랄까 시원섭섭하다던가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이젠 정말 가는구나 하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이 꽃의 이름이 무척이나 궁금했는데 결국 못 알아내고 와 버렸다.

하네다까지 가는 리무진을 타기 위해 신주쿠로 왔다.

올 때는 리무진 배차간격이 넓어서 어쩔 수 없이 모노레일과 지하철을 이용했는데 확실히 리무진은 편했다.
창가 자리에 앉아서 초록 나뭇잎과 따가운 아침 햇살이 스치듯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동일본 대지진 때 춤추듯 흔들리던 수도 고속도로의 가로등과 같은 것이 눈에 스쳤다.
햇볕을 가린다는 핑계로 커튼을 쳐버리고 눈을 감았다.

공항에 너무 일찍 왔다.

하네다는 조그만 공항이었고 수속도 얼마 걸리지 않아서 난 세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을 공항에서 보내야 할 처지가 됐다.
노트북이 있어서 인터넷을 잡아 무언가 하려다 그만 두고, 못다한 선물 구입을 하러 몇 안되는 매장을 돌았다.

DSLR 카메라는 처음부터 그랬지만 나에게 짐이었다.
물론 무거운 그 덩치만큼이나 좋은 사진을 쥐어주긴 했지만 돌아갈 때는 짐가방 안에 여러 짐들과 함께 나뒹굴었다. 
대신 새로 산 로모, 라 사르디나를 손에 쥐고 몇 안되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공항에서의 사진, 라 사르디나 블릿츠.


필카는 난생 이게 처음이었고, 일본에서는 현상 자체를 안했었다.
디카가 처음 나오던 시절부터 디카를 사용하던 나에게 손으로 끼익끼익 태엽 감듯 필름을 감고 푸는 걸 반복해야하는 이 작은 장난감 같은 카메라는 초반 세 롤의 한 롤당 10장정도는 아무것도 찍히지 않은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게다가 첫 세롤의 필름 스캔 상태가 매우 안좋았던 것도 한 몫했고.
현상소에서 무슨 짓을 한건지 스크래치와 먼지로 엉망이었다.

그 세 롤 말고도 남은 사진이 있다는걸, 그리고 아직 현상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고 그걸 이제서야 현상했다.
일본에서 돌아올 때 몇 장, 그리고 돌아와서 몇 장.
그동안은 사진 찍을 여유고 뭐고 없어서 못 챙겼지만 지금 보니 첫 세롤보다는 그나마 나아졌다.
여전히 몇몇 사진은 흔들리고, 제대로 상이 맺히지도 않았지만.

게다가 필름에 따라 다른 느낌이 나는 것도, 비네팅이 확실히 눈에 보이는 것도 맘에 든다.
십년 넘게 꿋꿋한 2G유저였다가 얼마 전 바꾼 새 폰의 카메라도 좋지만, 디카보다 이 작은 카메라를 더욱 애용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사진을 보다보니, 그 때의 내가 생각나서 한없이 서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