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너희에게 죄는 없지만... Tokyo Drift Life

조금 지난 일이지만,
일본에 와서 일본의 역사나, 한국과의 관계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일본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그런 이야기를 할만큼 깊숙히 친밀한 사이가 없던 때였던 터라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것 조차 신기할 따름이었다.

사람에 따라서 화제거리로 나오기도 하고 나오지 않기도 하는, 성격 자체가 미묘한 문제이기도 하고
여긴 일본이라 내 편, 그러니까 한국편을 들어줄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터라
이야기를 하면서도 난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일본이 과거를 반성하고, 잘못을 빌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여기서 지내면서 그런 화제를 나눌 사람들도  지금은 곁에 없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확실히 그들이 이야기하는 기분을 이해 못하는것도 아니다.

그들은 말하고 있었다.
"지금의 우리들(현재의 일본인)은 죄가 없는 걸."

하지만,
그들도 알고 있었다.
일본이 중국이나 한국에 그 옛날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를.

그리고 나는 말했다.
"물론 너희들(지금 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죄는 없지만,
일본은 과거를 인정하지 않고 있고, 과거에 대한 사과나 반성조차 없는 걸."

개개인에 대한 죄를 묻는게 아니라, 사회 전체의 통념이나 인식상의 역사 의식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 말 이후에 일본 애들은 별 말을 하지 못했고.
뭐 그런 식으로 무거운 공기가 흐르는건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화제를 돌렸던 기억이 있다.

한사람 한사람의 개개인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그것 역시 중요하긴 하다.

일본이 교과서를 개정해 자신들이 유리한 쪽으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한사람이라도 제대로 된 일본 스스로의 역사를 알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 위에, 정부나 나라 차원의 역사 인식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이상
변하는건 아무것도 없다고 본다.

그러니까 일본은 이제까지 이런 형태가 계속 되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일본이란 나라가 그 옛날 무슨 일을 했건, 스스로에게 좋은 형태로 포장된 역사 의식을 갖고.
전후 입은 원폭이나 그 밖의 상황에 대해서는 피해의식을 가진 채,
왜곡되고 왜곡된 채로의 역사를 계속 써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은 자기의 역사의 치부는 가린채, 뭔가 대단히 뻥튀기된
신화같은 역사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예전에 MBC의 천황관련 다큐멘터리(당시에도 파격적인 천황이란 타이틀을 단 다큐였음.)를 봐도
인신(人神)적인 존재의 천황은 참 만들어진 역사의 한면을 보는 듯 했다.

지금도 천황은 일본에 존재하고 있고 신분제따위 없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키디어나 보통 사람들의 회화에서도~사마를 사용하는 일본의 왕의 호칭이
외국인인 나로서는 참 어색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패전 후 인신적인 존재에서 스스로가 인간임을 인정하는 성명을 발표 한 후로
인신이라는 인식은 사라졌는지 어쨌는지 나는 모르지만,
인신은 아니더라도 아직 일본인의 인식 속에서 천황이라는 존재는
보통 사람보다 상위의 존재로 인식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면 일본은 세계대전의 패전 상황에서도 국가적으로는 국민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미 상황은 패전으로 기울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지지 않았다고.
이겼다고.

자세한 일본의 근대사라든지를 모르는 나로서는 들은 이야기가 전부이지만
저런 식으로 국가가 잘못된 정보나 인식을 흘려 그 사실을 그대로 믿는 국민이 생겨나면
그 자체가 새로운 역사 왜곡이고, 그게 계속되면 잘못된 역사관을 고수한 채 굳어지는건 자명하다.

그런면에서 보면 현재 일본에서 태어나고, 살아가는 일부 개개인의 잘못은 없지만,
잘못된 역사나, 역사에 대한 반성, 사과를 하지 않는 국가라는 틀은 잘못이 있다.

그리고 그 국가를 운영하는 존재가 결국은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누군가는 국가라는 이름을 어깨에 매고, 그 잘못을 사과하고 반성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게 한 개인의 사과가 아닌, 국가전체의 사과, 반성이라는 명분을 얻기 위해서는
권력을 가진 자,통치권을 가진 국가원수급은 되어야하고.

그렇지만 과연 일본에 그런 일을 할 정치가가 있을까.

한참 선거철인 일본이지만 그런 사람이 있을것 같진 않다.
있다해도 그런 사람을 윗선에 올려줄 투표자가 없으면 그것은 무리니까.
투표자 개개인의 역사적 의식이나 인식이 이쪽에 있지 않다면
이런 이야기는 한참 먼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다.

일본에게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듣는 날은 과연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