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일본의 현재 모습. 미분류

지진 발생 일주일 이후부터는 뉴스 중간에 CM이 삽입되기 시작했다.
그 CM이라는 것이 의례 있던 상품 광고가 아닌, 우리나라로 치면 공익광고 같은 그런 CM.

자살방지를 위해 주변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볼 것을 권하는 광고,
독서를 장려하는 광고.
임산부에게 자릴 양보하고 노인을 돕는, 작지만 선뜻 행하기 힘든 것들.
마음으론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실천하는건 조금 어려운 그런 행동을
하나하나 실천해 볼 것을 권하는 광고들이 대부분이었다.

지진 발생 이주째가 되면서는 도쿄전력의 사죄에서부터 시작해, 야마자키 빵의 캠페인 중지 알림,
AU등 통신사의 비상연락게시 서비스, 171 서비스 등 재해와 관련된 정보 알림 CM등이 제작되어
방송 중간중간 삽입되기 시작했다.

이주일 중반쯤부터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등이 등장하는,
' 혼자가 아니다. 모두가 곁에 있다.',
'길고 긴 여정이 될 진 모르지만, 분명히 극복 해 낼 수 있다. 그렇게 믿자. 힘내라 , 일본!' 
라는 내용으로 재해를 입은 분들에겐 용기를,
다른 국민들에게는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를 알리는 심플한 광고가 흐르고 있다.

삼주째에 접어들면서는 일반 상품광고도 그 횟수가 늘어나긴 했지만
재해 후의 저런 CM편성도 외국인의 눈으로 본 나로선 뭐랄까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지만,
음...뭐랄까 색다르게(?) 느껴졌다.
우리나라에선 재난 후 저런식의 광고가 있었던가.
(있었던것 같기도 하고, 방식이 저런 방식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예전에 일본의 드라마 내용이나 유행가 가사가 너무나도 만화주제가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질적이고 유치하게 느껴졌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의 일본에게는
그런 만화적인 희망이나 기적이 필요한 순간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수만명의 목숨을 한꺼번에 앗아간 자연재해,
그리고 한 회사의 판단 미스가 불러온 인재로 인해 일본 동쪽 지역은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폐허가 되고, 오염된 땅과 바다는 언제 그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평생을 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또한 갈 곳을 잃어버리게 됐다.
안그래도 불경기라는 이 시기에, 더욱 더 험난한 삶을 강요받게 된 그들.
그리고 일본이란 땅에 살아갈 수많은 사람들. 

만약 우리나라가 이런 상황이었다면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얼 해야할까 생각해보게 된다.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이 재난은 너무나도 무섭고 도망가고 싶은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나도 보통의 여기 사람들처럼 동요하지 않고 냉정한 자세로,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며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감사히 쓰기로 하고 여기 남아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가 이런 상황이었다고 해도 선택지는 같을 것 같다.
돈 많고 힘있는 사람들이야 어디든지 떠날 수 있지만, 일반 서민이 이런 상황에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를 지키며,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 밖에 없는 것 같다.
정부도 믿을 수가 없어 ;ㅁ;!!!!!!!!!!!!!!

내 주변 상황 보고.
(뭐 아르바이트 하는 곳이나 내 활동반경의 극히 좁은 지역의 이야기긴 하지만..)

TV에서 쓸데없이 사재기 하지말자 라고 매일같이 떠들어도 이곳, 동경의 사재기는 계속 된다.
품목만 식료품, 전지 등에서 물로 바뀌었을 뿐.

어느곳에 가도 물은 없다.
더불어 우유팩을 만들 공장을 가동하지 못해 우유도 찾기 힘들고, 유제품, 계란도 찾기 힘들고..
식빵은 꽤 들어와 있으나 예전처럼 상품수가 다양하지 못하고, 가격이 비싸다.
이건 비단 식빵만의 이야기는 아니고 지진 직후 품절 현상을 겪었던 거의 모든 상품이 그러하다.

앞으로 먹거리, 마실거리의 가격인상은 불보듯 뻔함 ;ㅛ;
안그래도 올해 야채, 식용류 등 식자재 가격이 인상된지 얼마 안되고
4월에 또 인상계획이 있었는데 이번 재해까지 겹쳐서 먹고사는데 애로사항이 꽃필것은 자명하다. ㅜㅜ



손님들 이야기.


왠만하면 안된다라고 명시된 것에 토를 달지 않던 일본인이었지만
이제는 공공연히 안된다는 룰에 토를 달기 시작했다.
암묵적인 룰을 무시하고 이기심을 발휘(?)하는 사람도 종종 보이고.

센다이나 후쿠시마 등지에 공장과 생산지를 둔 상품은 자취를 감춘지 오래고,
언제 다시 공장을 가동할 수 있을지조차 불분명한 상태이다.
그런 정보가 소비자한테까지 전해졌는지 해당 상품을 사재기하려는 사람들이 매장을 찾고 있고..
그래봤자 업자들이 그걸 모를리 없어서 판매 수 제한을 두거나, 이미 다 팔려서 없는 상태.

여튼 지진 이후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화려했던, 휘황찬란하기까지 했던 마을에, 거리에, 빌딩 숲에 하나둘 빛이 줄어들었다.
가로등 마저 꺼져서 거리가 무섭다 ㅜㅜ
밤 늦도록 영업했던 가게들은 영업시간을 단축하고 서둘러 문을 닫는다.
아마도 올해는 일루미네이션, 루미나리에 같은 단어는 듣지 못할지도.

졸업식, 입학식을 비롯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할 4월이 곧 다가오지만 분위기는 그만큼 밝지 못하다.
입학식 자체가 취소된 학교도 많이 보이고, 언제 학교가 제대로 돌아올지도 알 수 없는 곳도 많다.

몇 달전부터 기대하며 예매한 이벤트는 개최를 취소하거나 중지했고, 나 역시 환불이나 이벤트 재개를 기다리고 있다. 
(3월11일 이후 약 한달간의 거의 모든 이벤트는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화분증때문에 마스크나 고글, 선그라스가 보편적인 일본이지만 모자,비옷, 장갑등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줄지 않고 있고.
비오는 날 바깥에서 비를 맞으며 일해야하는 사람들의 짜증과 불만이 대폭(!) 늘었다.
비오고 난 다음날 수돗물의 방사능 물질 수치가 대폭 늘어나는 것도 달라진 점 ㅜㅜ
덕분에 생수장사만 신났고.......

여느때라면 하나미 준비로 떠들썩할 3월말이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조용하다.
일본 최대 관광철이라고도 할 수 있는 봄을 맞이하지만 예년과는 다른 봄을 맞이할 듯 하다.

난 이런 시기에 이런 나라에 있고!!! ;ㅁ;

뭐 일본에 딱히 좋아하는걸 하기 때문에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여행을 많이 다닌 것도 아닌, 그냥 훌훌 털고 떠나도 아무 아쉬울 것 없는 상황의 나지만
그대로 접고 나가기엔 뭔가 시원치 않았다.

부모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나도 내 나름대로 각오와 의지가 있기때문에
할 수 있는데까지, 남아있는 기간까지는 몸 건강하게 무사히, 이 일본 생활에서 무언가 확실히 얻어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처음엔 왜 내가 있을 때 이런 일이!!!!!!!!라는 마음도 없던 건 아니지만,
이것도 또 하나의 인생의 수련(!)이라 생각하고 잘 대처해가려고 한다.

인생,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


덧글

  • 한다나 2011/03/28 06:02 #

    많이 공감했습니다. 전 원래 3월 말까지 일을 하기로 해서 일단 한국에 안 가고 버티고 있는 거였지만 이런 상황의 일본을 두고 가려니 또 마음이 싱숭생숭 하네요...앞으로도 어렵겠지만 힘내세요. 우리보다 더 힘든데도 아무 내색 않고 일상을 지키는 사람들이 이 나라에는 참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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