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동일본 대지진, 당일. Tokyo Drift Life

<지진이 나고 하루지나서야 눈치 챈 멈춰버린 시계.>

매일 이 시계를 보고 얼마나 허둥지둥 댔는지..

이 시계가 내가 지금 일본에서 살고 있는 도미토리방에 걸린 시계인데
이 시계가 10분 정도 느리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이 시계를 보며 알바시간에 안 늦기 위해서
매일 뛰다시피 집을 뛰쳐나가곤 했는데 오늘 이 시계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지진이 난 시각인 2시 46분에 멈춰있는 시계.
.
.
.
.
11일, 지진이 일어났던 시간.
나는 상점가의 북오프에서 책을 보려고 하고 있었다.

알바가 있는 날이긴 했지만 조금 일찍 나가서 상점가에서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쇼핑도 해야지..하는 생각으로
알바하는 시간보다 두세시간 먼저 집을 나섰다.

그리고 요새 인테리어/소품등에도 관심이 높은지라
북오프에서 인테리어 잡화 관련 책을 종종 보곤 했던 터라
책이라도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던 북오프.

순간 울렁 하는 느낌이 들더니
드드드드...하는 땅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늘 있던 그런 지진의 소리가 아니었다.

안그래도 그런 것에 엄청 쪼는 소심한 나는 북오프를 뛰쳐나왔다.
점원의 "이거 위험한거 아냐?" 라는 소리를 뒤로하고.

그 후 정말 큰 울렁임이 시작되더니 한동안 계속 됐다.
상점거리로 쏟아진 사람들이 당황한 목소리를 높이며
그 자리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상황에서 나는 뉴질랜드가 떠오르면서 무서워졌다.

뉴질랜드 지진이 있고 얼마안된 터인데다가
뉴질랜드에서 희생된 일본인이 꽤 많은지라 관련 뉴스를 보면서
여러가지 착잡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많이 느꼈었다.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근데 그 상황을 내가 맞닥뜨린거다.
너무 무서웠다. 

내가 사는 곳은 신주쿠와 이어지는 수도고속도로를 접하고 있는데 수도고속도로도 흔들리고 있었다.
높은 위치에 위치하고 있는 도로라 언제나 차량의 진동으로 조금씩 흔들리지만
그날의 흔들림은 역시 차원이 달랐다.

좌우로 엄청 흔들리는 가로등과 전선, 건물, 바닥의 진동을 보고 느끼며
나는 목적지도 없으면서 마구 걸었다.
(원래 지진이 났을때는 일단 창가나 낙하물이 없는 위치로 피한 이후에는
 지진이 수그러들때까지 움직이면 안되지만.)

지진에 익숙한 일본인이지만 일본인들의 이런 당황한 모습은 정말 처음이었다.
울먹이는 중년 여성, 다들 거리밖으로 쏟아져 서있거나 무언가 붙잡고 있기바쁜가운데
 그 사이를 뚫고 거리로 나가는 나와 시선이 마주친 음식점 점원의 당황한 얼굴을 
뒤로하고 사람들을 헤치고 걸었다.

걸으며 같이 사는 한국인 여자애와 일본인 메이트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가 불통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것은 마찬가지 인듯 전화기를 붙잡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걸어서 내가 간 곳은 알바를 하고 있는 가게였다.
가게에 들어갔더니 술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고
진열대에 있던 일본주가 몽땅 쏟아져 깨져있었다.

함께 일하는 중년 아저씨들이 그것을 정리하면서 무서웠다라고 토하듯 말하는 것을 들으며
나도 그 정리를 도왔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안면식이 있는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국에서 그나마 알게 된 사람들.
그 사람들이 무사한 것을 알게 되고 그 사람들이랑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조금 위안이 됐다.

그 후 다시 거리로 나와 전화를 계속 했지만 전화가 되지 않았고
그 후 큰 여진이 몇번이나 계속 됐다.

사람들은 주저앉거나 서로 뭉쳐서 뭔가 이야기 하기 바빴고
여진이 일어났을때는 "위험하니까 창가에서 떨어져 주세요" 라고 외치는 등
질서를 유지하면서 서로의 안전을 살피고 있었다.

자주 가던 마트는 영업을 정지한다는 종이를 붙인 채 문을 닫았다.
그런 식으로 지진이 난 직후 대형 마트나 수퍼등의 일부는 영업을 중지했다.


덕분에 편의점으로 몰린 사람들이 식료품을 사느라 편의점이 북적이고 있었다.
나도 물 500ml한병과 빵 한개를 사서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 당시만 해도 지진이 난지 얼마 안된 상태라 진열대에는 꽤 많은 식품이 있었지만
 저녁무렵에 다시 가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오후 네시.

원래 알바 시간은 다섯시부터지만 네시에 나는 알바하는 가게에 들어갔다.
배송을 해주는 알바생들은 본사의 지시로 배송작업이 중지되어서 일손을 놓고 있었고
사원 한명은 가족과 연락이 되지 않아서 무척이나 걱정스러운 모습이었다.

이 때까지도 나는 이 지진의 피해정도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원세그라고 불리는 핸드폰 TV로 파악했을때는
오다이바 근처의 건물에 화재가 나서 연기가 나고 있는 모습정도였고
진도 7정도로 파악된다는 인터넷 뉴스를 전해준 사원의 말이 전부였다.

나중에 이 진도는 8.8로 상승됐지만.
일본 지진상 최대, 최악으로 기록될 지진이었다.

오후 다섯시.
알바를 시작했다.

내가 하는 일은 가게 안의 상품 정리와 계산해주는 일.
음료나 주류를 배송으로 해주는게 주된 업무라 배송이 중단된 상태로서는
 매출이 적을 것으로 생각됐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마트가 문을 닫은 상황에 물이나 식료품을 구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가게로 몰려서
물과 라면, 즉석 밥등을 쓸어담듯 사가기 시작했다.

어느 손님은 물을 여러박스 배송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지진의 영향으로
배송을 중지했다고하자 그럼 한박스라도 직접 가져가겠다고
박스채 물을 사가기도 했다.

연말연시를 연상케하는 수의 손님들이 가게로 몰아닥쳤고,
지진의 영향으로 전철이 멈추자 걸어서 퇴근하는 사람들이 거리에 넘쳐났다.

신주쿠에서 메이다이마에.
나도 걸어가본 적 있지만 꽤 멀다.
이쪽으로 계속가면 메이다에마에냐고 길을 묻는 사람.
화장실을 빌릴 수 있겠냐고 물어보는 사람.
얼마 없는 물과 라면, 식료품을 사러 가게로 몰려오는 사람.

다섯시간 정도의 짧은 시프트였지만 깨진 물건과 그 뒷정리,
상품 보충, 계산, 손님 대응등등으로 무척 바빴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지진 등 자연재해에는 식료품등의 보급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정부차원에서 해당 업종 회사에게 되도록 영업을 해 줄 것을 권고하고있었고
다른 업장에도 전화나 화장실을 빌려줄 것을 적극 홍보하고 있었다.

동경의 진도는 5정도 였다는데 진도 1정도에도 벌떡벌떡 깨던 나한테 5는 정말 큰 충격이었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정도의 그 공포에서
혼자 살려고 도망가거나 하기보단 주의사항을 큰 소리로 외쳐주거나 서로의 안전을 확보해주고
인솔해 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나,란도셀을 어깨에 맨 초등학생의 보호 모자를 쓴 모습.
헬멧을 착용한 채 걸어서 퇴근하는 회사원들의 그 침착한 모습은
혼란 가운데서도 많은 배울점을 남겼다.

오후 열시. 알바가 끝났다.

그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퇴근하고 있었고
나도 남은 직원에게 조심해서 돌아가라는 인사를 하고
일할 때 신었던 운동화 그대로 퇴근을 했다.
원래 부티를 신고 있었는데 여진도 계속 되고 있었고 어떻게 될 지 모르니까.

문이 열린 슈퍼나 편의점 모두 들어가봤지만
빵같은건 한개도 남아있지 않았고, 물도 거의 바닥나 있었다.
몇개의 편의점을 들렀다 겨우 라면 두개와 1.5리터짜리 생수를 하나 살 수 있었다.

그걸 산 편의점에 늘 보던 점원 대신 점장(점주)로 보이는
초로의 노인이 혼자 레지 업무를 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또 마음이 시큰해졌다.
아마 점원들을 지진직후 귀가 시킨것이겠지.
나중에 다른 애한테 들었는데 할아버지뻘 되는 그 노인분은 그 후에도 새벽까지 일을 하셨다고.

열시 반이 좀 넘어서야 집에 도착.
거실에는 두명의 메이트가 돌아와있었다.
그 둘을 보자마자 오늘 지진에 대한 이야기가 터져나왔다.
정말 심했다고, 죽는 줄 알았다고.

거실에는 찬장에서 쏟아진 물건이 깨져 널부러져있고
욕실 욕조에 모두의 욕실 용품(샴푸라든가;;)가 몽땅 쏟아져있고
방에 올라가보니 캐비닛에 들어있던 물건이 바닥에 쏟아져있고 난리도 아니었다.

여튼 대충 정리를 할 수 있는건 하고 떨어지면 다칠 수 있는 물건들은 아예 밑에 내려놓고
정리할 엄두를 못내는 것은 그냥 놔둔채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뉴스로 본 지진 피해 상황은 무척 심각했다.
그 참상을 보며 인터넷으로 집에 전화를 해서 일단 무사한 것을 전하고
늦은 저녁을 라면으로 때웠다.

그 후에도 집이 흔들리는 꽤 큰 여진이 계속 되는 터라 잠을 잘 수 없었다.
11일은 거실에서 컴퓨터로 지인들에게 무사한 것을 전하고
뉴스를 보면서 밤을 샜다.

13일인 지금 뉴스에서는 3개의 거대한 지진이 연속해서 왔다
애초 발표했던 진도 7(미국발표), 8.8 (일본의 어제까지의 진도)에서
 매그니튜드는 9.0으로 상승 되었고
진도6강 정도로 예상되는 여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현재 사망자, 행방불명자를 포함한 피해자가 2800명으로 증가.
쓰나미에 휩쓸린 마을의 거주자 1만명과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다 .
(현장의 VTR을 보면 살아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 같아 더욱 절망적이다.)

치바의 콤비나드의 화재도 아직 진화되지 않았고
후쿠시마의 원전 3호기도 냉각장치가 정지해서 위험한 상황이라서
앞으로도 피해가 정말 엄청나게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도쿄는 다른 곳에 비해서 피해가 경미하지만
여진이 꽤 강하게 자주 오고 있고 원전이 특히 걱정인 상황이다.

폭발이 있었던 원전 부근의 주민 일부에게서 피폭의 정황을 확인했다는 뉴스도 있고
3호기의 상황도 별로 좋지않기 때문에 특히 그쪽을 유의해서 봐야할 것 같다.

라이프라인(가스,전기,수도 등)이 아직 움직이고 있는 도쿄는 그나마 괜찮은 상황이지만
다른 지역은 정전이나 단수,가스정지상태 가 계속 되고 있고
병원에서도 전기등이 부족해 진료를 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되도록 전기, 수도등을 절약해서 꼭 써야하는 곳에만 쓰도록 방송에서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쓰나미에 의한 도시 전체의 파괴정도가 정말 심각해서
이게 영화의 한장면인지 현실인지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됐을지 생각하기도 싫다.

한국 집에서는 당장 들어오라고 하지만 비행기편도 마련하기 쉽지 않고
현재 상황으로서는 언제 나갈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지진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이고, 다음에는 어느 곳이 큰 타격을 받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도쿄에 이런 큰 지진이 온다면 정말 괴멸적인 상황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여기 있는게 좋을까, 아님 당장이라도 나가야 할까?

당장 나가야 할 지, 상황을 봐야할지도 혼란스럽지만
여진이 계속되는 이 상황에서 삐그덕대는 목조건물에 있다는 것이
불안하고 무서워서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같이 사는 일본애들은 대부분 괜찮아 등의 침착한 반응을 보이지만
작은 백에 피난굿즈를 챙겨놓았다며 나한테도 그러는게 좋겠다고 이야기 했다.

사실 짐을 대충 꾸려놔야 하는 생각은 지진 직후부터 하고 있었지만 아직 챙겨놓지 못했다.
나는 작은 백 따위 없고 그렇다고 비상상황에 이민가방을 질질 끌고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정말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랑 여권 정도만 챙겨야할 상황;

살아있음에 감사하지만 여러상황상 참으로 혼란스럽고 무서웠던
주말이 지나가고 있다.

덧글

  • 채다인 2011/03/13 13:29 #

    앗앗 다행이에요 갱신 안되서 걱정이었다능 ;ㅅ;ㅅ;ㅅ;ㅅ;)//
  • ringoami 2011/03/13 13:31 #

    당일이나 담날은 여진등등 땜에 포스팅할 여유가 없었어요;
    지금도 여진은 계속 되지만 그나마 안정되서 괜찮아졌지만요;;
  • 2011/03/13 13:5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ringoami 2011/03/13 14:31 #

    네이트는 이 아이디쓰고 있어요 ringoami
    트윗은 삭제했고 페이스북도 저 아이디로 이용중이예요
  • yujin0_0 2011/03/13 17:56 #

    밸리에서 보고 들어왔습니다.
    무사하시다니 다행이에요><

    이제서야 여진도 좀 줄어든 거 같네요..ㅠ_ㅠ
    무서운건 변함없지만..
  • ringoami 2011/03/13 18:24 #

    일본이신가보네요. 괜찮으신지.

    확실히 오늘 큰 여진도 몇번 있긴 했지만 어젯밤에 비해서는 많이 줄었네요
    이대로 여진이 줄었으면;;
    3일내에 진도 6~7의 여진이 일어날 확률 70%라고 하는데 그 이후는 50%로 줄고 한다니까...

    더 이상 큰 피해 없이 상황이 정리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ㅠㅠ
  • 레이어 2011/03/13 19:26 #

    밸리 보고 왔습니다..
    무사하시다니 다행이네요.

  • ringoami 2011/03/13 19:29 #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도 아무 피해 없고 무사하시길 바랄뿐입니다.
    뉴스보니 정말 남의 일 같지 않네요..
  • 언노운미쿠 2011/03/13 20:31 #

    무사하시다니 다행입니다 ㅠㅠ.
  • ringoami 2011/03/13 23:25 #

    더 이상 피해가 없길 바랄뿐이예요 , 정말...
  • 코토네 2011/03/13 23:36 #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 ringoami 2011/03/16 03:48 #

    ㅜㅜ 여진에 잠 못자고 늙어만 갑니다 ㅜㅜ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