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그때 일본에 왔더라면? Tokyo Drift Life

개인적으로 대학에 갓 들어갔을때 어학연수를 원했던 적이있다.

어학쪽 학과였기때문에 필수적으로 해당언어의 자격증이 필요했고,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도 그 편이 빠르고 좋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기때문이다.

허나 보수적이었던 가풍상 절대 안돼!로 나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원래부터 그 학과도 차선책 중의 차선책였던 것으로 무엇하나 내 맘대로 할 수 있었던 게 없던 시절의 반발감과 상실감으로
나는 그 학과의 졸업장을 따지 못한 채, 그 학과와 안녕을 고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회사와 다시 학교, 그리고 취업전쟁을 거쳐 그 시절의 나와는 좀 많이 다른 새로운 모습(?)을 한 나는
이제 그때의 치기나 객기(ㅋㅋ)같은 것은 거의 사라졌지만,그때와는 좀 다른 관념의 기준과 가치관이 생성됐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일본이란 나라에 와 있다.

스무살, 어른이 되었다고, 대학 들어갔다고 자유를 느끼던 그 시절에
일본에 왔었다면 난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봤다.

그때와 지금은 시간적, 정신적으로 상황이 많이 다르기때문에 그 상상을 하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것 같다.

그땐 게임이나 만화에 빠져살던 고딩시절의 연속이었던지라
그때 일본에 왔더라면 덕질을 하며 살진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90년대는 여러모로 죄 많고도(..)좋았던 시절이라고 회상하는데
국산 RPG의 인기와 더불어 광렌 구축,PC방의 등장,온라인 게임의 폭발적 증가,
뒷거래로만 접할 수 있었던 일본문화의 정식 개방 등등 문화적으로 꽤나 폭발적인 시대였다.
(물론 90년대 초반 imf를 비롯한 여러 경제위기가 있어, 세대에 따라 그 감상은 다를 수 있지만
부모에게 용돈받아 학교 다니고 노는게 일과였던 찌질이 초중딩에게 부모들의 눈물과 한숨은 알 턱이 없었지...)

여튼 그 시대를 넘어 그 보다 더한 오덕과 매니악한 것들이 넘치는 일본에 왔더라면?

으악 ㅋㅋㅋㅋㅋㅋㅋ
상상만으로도 뿜기고 웃기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게임이나 만화에 손 끊은지 꽤 되고, 간혹 해볼까 잡아도 한두시간을 하기 힘들어진 나에게도
날밤 새서 게임을 클리어하고 학교에 가던 시절이 있었다니.
그 시절의 연속을 계속하다 보면 니트나 히키코모리가 됐을지도 몰라!
뭐 극단적인 이야기지만 ㅋ

두번째로 생각해 보는건데,
그때나 지금이나 일본 연예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해서 아이돌 팬질을 하며 살진 않았을 것 같다.
그러고보면 난 연예인, TV에 특히 관심이 없는 인간이었다.
여기서도 TV는 너무 재미없는 정말 바보상자에 불과하다.

게다가 나는 확실히 취향이 마이너라 -_-;
좋아하는 성우 이름 댔더니 " 꽤 마이너하네"라고 대답이 돌아오거나
내가 듣는 음악들을 보고 "독특한-여러가지-음악 듣네?"라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난 대체적으로 주역보다 조연, 센터보다 아웃사이더 쪽을 더 선호했고, OST나 제 3세계 음악(세네갈!)같은 것을 듣고 다닌지라
같이 노래방에 가도 내가 아는 노래는 중고딩 시절 듣던 j-pop이 전부였다.
지금의 이 나라의 메이져한 그룹엔 끼기 힘들다고나 할까 ㅋㅋ
그렇다고 내가 한국의 메이져한 문화에 빠삭한것도 아니라서 한국의 유행에도 뒤쳐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어쨌든 나는 유행과는 거리가 먼 인간.

그래서 모이면 연애, 유행, 연예인 이야기를 의례하는 여자들의 모임에 끼면 할말이 없어지거나 하지만,
일본이란 나라는 그런 메이져한 문화말고도 독특한 문화들이 많이 있고
그 문화층을 지탱하고 있는 계층 또한 확고한 편이라 더 재미있는 것 같다.

TV와 인터넷이 전부였던 그 시절 독특한 문화, 마이너 문화에 눈을 돌렸을지는 의문이지만..

세번째,
지금보다 한참 젊고 철없을 시절에 일본에 왔다면
분명 소비적이고 쾌락에 민감한 일본 문화에 동화되었을지도 모른다.

앞서 말했듯 유행에 둔감하고 꾸미는 것도 잘 안하는 내가 과연 정말 그렇게 됐을까 하는 반문도 들지만
닫힌 세계에서 풀려난 해방감에 이것저것 저질러 봤을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그리고 어렸을때의 유학이란 대부분 부모의 돈을 빌어 행해지는것이라
돈의 소중함, 만원 한장 벌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와 노력이 드는지 알지 못하는
철 없는 어린애는 해방감과 신세계에의 유혹과 달콤함에 빠져 허우적 댔을지도 모르지.
일본이란 나라에서 여자애가 큰 돈을 벌려고 맘 먹으면 방법이야 어찌됐든 그 자체가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회사에서 썩어가며 울면서도 일을 해야했던 경험을 겪고 난 후 돈이란 것이 얼마나 사람을 비참하게 하는지,
돈이란것을 벌기 위해서 우리 엄마 아빠는 이런 일을 매일, 그것도 수십년간 해 온 것이구나 하는 걸 알고 난 후의
지금의 나라면 절대 소비적이고 쾌락적인 생활을 하진 않겠지만 그 때라면 이야기가 다를지도.

사담이지만,이케부쿠로에서 완전 갸르의 모습을 한 한국인을 본 적이 있다.
혼자가 아니라 옆엔 친구인 듯 한 동행인과 함께였는데 친구는 보통의 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그 갸르풍 아가씨는 그 거리에서도 별로 볼 수 없는 엄청난 포스의 차림새였기때문에 인지 너무나도 눈에 띄고 위화감마저 들었다.
한국말을 하는 일본거리의 한국인 갸르.

한참 젊고 예쁠때, 유행에 민감한 어린 유학생이 일본에 와서 일본식의 생활을 하고 일본의 한부류의 차림을 하는게 나쁜 것도 아니고 개인의 취향일 뿐이지만 왠지 모를 그 위화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머리가 굳고 나란 인간이 보수적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내 스스로를 개방적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꽤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탓인지 내 안에는 보수적인 면도 있는것 같다.)

여튼 내가 그런 모습을 한 채 일본의 밤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람이란게 사회,문화적으로 휩쓸리기 쉬운 존재이고, 어렸을적의 나는 무턱대고 이 나라에 오고 싶어했었으니까.

근데 나는 원판이 별로라 갸르건 뭐건 안 어울리겠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의 나는 뭐랄까
젊었을때의 치기, 오기가 많이 사라져서 그런지 조금은 어른이 됐다는 느낌이다.

쓰잘데기 없는 것에 감정과 시간을 소비하지 않고 좀 더 다른 눈으로 이 나라를 보고 있다.
무턱대고 살고 있는 나라를 바꿔보고자, 도망가고자 했던 어리석은 감정의 연장선이 아닌,
돌아가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살아가야 할 나라의 이것저것을 바꿔보고 싶은 마음을 가진 채 이 나라에 있다.

이 나라는 확실히 우리의 과거사, 근현대사에 있어 많은 아픔을 끼친 나라이지만
세계의 경제, 문화, 위상면에서 상위권에 있고, 배울 점이 분명히 있는 나라이다.
또 늘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추악한 면에서 조차 무언가 배울점은 있으니까.

이 나라의 국민 아주 극히 일부분과 대화하고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 내가 이 나라의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좋은 것만 보고 배워가자고 맘 먹어도 그 좋은게 뭘까 라는 확실한 대답을 찾기에도 짧은,
잠시 스치듯 있다 떠나는 형태로 이곳에 있기때문에 무언가 확고한 형태로 해답을 찾아 돌아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여튼 그 때 왔었더라면 느낄 수 없었을 형태의 이런저런 감정을 하나하나 쌓아가고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게 이런걸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런 변화조차 삶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또 재미있다.

반항심, 반발감, 상실감으로 가득했던 나의 조금은 암울했던 그 시기를 벗어나고자 이 나라를 택했더라면
난 어떻게 변했을까.

그때와는 다르게 옳고 그른것의 선,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확고한 잣대가 있는 지금은 이 나라가 아닌 다른 어느 곳을 가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내 나름의 방법으로 살아갈 자신이 있다.
비록 부나 명예는 손에 넣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조금 많이 늦은 감이 있는 잠깐의 외도이지만, 그 늦음에 대해서도 감사하게 됐다.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운이 좋았고, 중간과정에 삐그덕 거림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지금 나는 여기있다.





삶의 한부분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만들어준 오늘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