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시작하기 전에. Tokyo Drift Life


2009년 9월 7일 워킹 비자 취득.


나이도 많고, 첫 도전이라 당연히 떨어질 줄로 생각하고 가볍게 넣은 워킹 서류가 합격했던게 벌써 작년.
합격하고 나서도 바로 출국할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안했다.

워킹 말고도 준비하고 있던 것이 이것저것 있었기 때문에 제1순위로 생각하지도 않았었고,
현실적인 문제도 있고 해서 바로 감행 할 수는 없었다.

워킹 합격생(?)들의 블로그를 보면 나중에 책을 내겠다(!)라는 취지로 하나하나 기록하는 패턴이 많던데
이미 그런 책은 포화상태고 나는 그런 면은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에 지금껏 개인적인 기록은 하고 있었지만
지금껏 블로그에 포스팅은 하지 않았었다.(잠깐 별 내용 없는 사진은 올린 적이 있지만.)

여튼 일본 생활 시작한지 4개월째에서야 다시 포스팅 할 마음을 먹은 것은,
일단 내가 블로그를 아직 버리지 않았다는 것과,
이글루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꽤 있었다는 것을 상기해 냈기 때문이다.

확실히 포스팅을 하지 않더라도 밸리를 돌며 얻는 정보나 이미지는
나처럼 일본에 지인이 없거나, 있어도 활동반경이 좁은 사람한테는 꽤 도움이 되고 있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타국 생활을 하고 있는지 훔쳐볼 수 있는 기회도 되기때문에 
자극이 된다고나 할까.
 
그리고 나도 그 정보 공유에 동참하고 또 얻어볼까 하는 맘이 크다.
블로그에 몇 개월째 새글이 없는것도 왠지 섭섭하고 ㅜㅜ

여튼 다시 워킹 이야기로 돌아와서..

비자 취득 후 일년간 이런저런 삽질과 여러 일들이 있고 난 후 출국 하기로 맘을 먹었다.
일을 저지른 후에도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았고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고
큰 일 하나를 치른 후 곧바로 출국하게 되서 여러모로 걱정이 됐던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니까 이왕 가기로 한것, 잘되던 잘 못 되던 부딪혀보자는 마음이 강했다.

그러고보면 옛날에 비하면 일단 저질러 보고, 해보고 나서 후회해도 하자라는 생각을 많이 가지게 됐다.
난 어렸을때부터 뭘 하기도 전에 꺽였던 적이 많았기 때문에 이 나이 먹고 뭐가 무섭냐~!
[내일 죽어도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죽어야겠다!] 라는 신조가 생기게 됐다.

또 다른 이유는...


[안돼.]

내가 싫어하는 단어 중에 하나인 저 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너무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 안돼 라는 말을 한대 갈겨주고 싶었달까 -_-

워킹도 [안돼.]라는 소리를 몇번 듣긴 했다.

그 이외에 뭐가 안되는 것이었는지는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말할지도 모르지만,
(뭐 이곳은 지인 중에 보는 사람도 없고 ㅋㅋ)
그건 이 시점에서 뭐 중요한 건 아니니까 넘어가고.


2010년 9월 6일 출국.(AM 11:55 JAL092)

오버 차지해서 30kg 맞춘 수화물에 간당간당하게 맞춘 이민 가방 하나와 노트북 가방 하나가 내 짐의 전부.
캐리어도 없이 이민가방 하나에 다 때려몰아(?) 넣은 터라 엄청 난 부피와 무게의 이민가방 ㅜㅜ

게다가 이때 환율이 정말 미친듯이 폭발하던 시기라 100엔 당 1427원에 환전을 했다.
지금보다도 높은 이 최고 수준의 환율에 눈물을 폭풍같이 흘렸던 기억이 생생.
그리고 일본 온지 2주만에 간 나오토 때문에 1400원 이하로 떨어졌지 ㅜㅜ
조금만 일찍 당선 되어 주지 그랬어....................ㅜㅜ

공항은 김포공항을 이용해서 출국했는데 동네 버스 터미널 같은 이미지가 느껴졌다.
해외를 많이 나가지도 않았지만 나갈때마다 인천공항을 이용했기때문에 좀 많이 뭐가 없다(?)는 느낌이었다.

여튼 집에서부터 혼자 짐 낑낑대고 공항까지 왔는데
공부하느라 바쁠 친구가 나와주고, 선물도 주고 이래저래 좀 찡했음.

이거 무슨 드라마에 나오는 공항에서 헤어지는 연인의 시츄에이션이야 라며 좀 웃었지만
그래도 친구뇬 하나의 등장에 마음이 훈훈.

가족과 친구에게는 잘 합시다.

비행기편은 1년 오픈티켓의 투어2000의 워킹할인 플랜을 이용했는데
항공사는 JAL, 이코노미 어퍼데커(2층)석 지정 , 씨푸드 밀 지정해서 여행다닐때는 안하던 짓을 좀 해봤다.


곧 후회했지만 -_-;


20100906 재미 없었던 어퍼데커-_-에서 바라본 후지산.


20100906 재미 없었던 기내식 -_-

그냥 평범한 기내식을 먹을걸 괜히 시푸드를 골라가지고 요모양 요꼴.
이게 어디가 시푸드냐!!!!!!!!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난 말을 못하니까 꾹 참고 질긴 바게트를 철근같이 씹으며
옆자리 아저씨의 일반 기내식을 부러워했었지....

비행기도 어퍼데커 별로였고, 기내식도 별로였고, 말 안통하는 비행기도 싫다~~~~~~
어퍼데커의 창과 눈높이가 안맞아서 묘하게 불편했고 ㅜㅜ
..내 일본어가 짧은건 원래 알고 있었지만 실제 맞닥뜨린 언어의 장벽은 심각했음.

출입국 신고서랑 세관신고서 달라고도 못했던 그때의 나 ㅜㅜ

승무원 중에 한국인도 없고 해서 손짓 발짓 해서 세관신고서는 받았지만
출입국 신고서가 다 떨어졌다며 입국 심사장에서 쓰라네?????????????????????


덕분에 맨 꼴지로 입국심사 -_-

공항에서 입국심사 통과로 진땀빼고, 안 통하는 일본어로 이민 가방 숙소로 보내고
땀 한바가지 흘리며 부동산이 있다는 시모기타자와에 가서 게스트하우스 계약과
입거(入居)하는 것으로 하루를 다 보냈다.

게스트하우스는 인터넷에서 보고 가장 싼(!) 동경 도심근처(!)로 결정했었는데
지금도 그 곳에 살고 있다.

결정시 가장 중요하게 여긴건 가격이었다.
잠만 자고 씻고 할 건데 다달이 비싼 가격 무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기에 ㅜㅜ

사실 도미토리 생활 해 본적이 전혀 없는데 신기할 정도로 잘 자고 먹고 싸고 ㅋㅋ
잘 살고 있다.

나란 인간은 환경 변화에 민감한 인간이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그렇지만도 않은듯?
서울 살 때보다 몸 상태 좋고 ㅜㅜ

이 위치에 이 가격이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고, 하우스 메이트들도 나름 거의(!) 괜찮고
(반대로 말하면 다 좋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소리.
나중에 이 사건(?)에 대해 꼭 쓰고 싶다. ㅋㅋㅋㅋ)

몇명과는 꽤 친하게 놀러도 같이 다니고 하는 터라 
지금껏 향수에 시달린다거나 돌아가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 살아야지하는 생각도 들지 않지만. 

여튼 말도 잘 못하는 주제에 이것저것 허둥지둥거리면서도 어찌어찌 나이 많은 국제 미아 되지 않고 
잘 도착해서 이것저것 해야할 일 해나가는 것을 보면 스스로가 장하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지금도 부족한것 투성이지만 하나하나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배우는 것도 많았기 때문에
역시 오길 잘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부모님과 함께 오랜 기간동안 살았고, 직장 생활 하면서 잠시 떨어져 살때 빼고는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 바둥거린 경험이랄까 별로 없었다.
회사 다닐때는 야근과 철야에 썩을대로 썩은(?) 몸과 마음을 하고 회사와 집을 반복하는
정말 재미없고 단조로운 생활이었고.

한마디로 참 쉽게 살았다는 소리.

여기와서 안되는 말로 의사 표현하고, 알바 찾으면서 거절 당하고 무시당하고,
그때마다 땅 파며 축 쳐져 있기도 하고, 다시 뭔가 해야겠다고 바동거리는 스스로의 모습은
여느 때보다 괜찮은 느낌?ㅋ
(나는 M이었던가?!!!!) 

여기서 이런저런 일 겪으며 좀 더 강해지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면
한국에 돌아가서도 왠지 잘 할 수 있을거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고 모두들 말하지만 ㅋㅋㅋㅋ) 

여튼 정착 초기로 여겨지는 첫 석달을 무사히 보냈고,
지금은 일도 구해서 본격적인 워킹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처지가 됐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좋은 일은 좋은 일대로, 나쁜 일은 나쁜대로 솔직하게 포장하지 않고 써 내려가 보려고 한다.

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기회로 이 1년이라는 짧은 기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20101207 am 3:08